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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길잡이

지방교회의 이단성 2
본문내용
자료출처 http://www.facebook.com/media/set/?set=a.108438519225271.8074.100001773709187&type=1#!/notes/%EA%B9%80%EC%84%B1%EC%9D%BC/%EC%A7%80%EB%B0%A9%EA%B5%90%ED%9A%8C%EC%9D%98-%EC%9D%B4%EB%8B%A8%EC%84%B1-2/204384636297325

2) 기독론
정통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지 않으며, 인성과 신성이 변화되지 않은 채 하나의 인격으로 연합되었다고 가르친다. 어느 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구별되거나 서로 대립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내용으로 볼 때에 예수는 참사람이었으며 참하나님이셨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두 인격과 두 품성을 가졌다는 성경적인 내용을 단 하나도 찾아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은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참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태초부터 계신 참 하나님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교회사를 통하여 살펴 보면, 초대교회의 기독론에서 다음과 같은 이단적인 주장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주장 중에서 많은 이단적인 주장이 있었는데 간략하게 정리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➀ 예수는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의 결합이라는 일부 그노시스파
➁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한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사벨리우스파의 양태론
➂ 그리스도의 일부는 피조물, 일부는 창조주라고 하는 반신으로 만든 아리우스파
➃ 인간이 육체와 혼과 영의 세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혼의 두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영으로 들어온다는 아폴로내리스파의 견해
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여 양성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파

우리는 이러한 이단적인 기독론에 대해서 벌콥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노시스(영지주의)와 아폴로내리우스, 그리고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이단들의 기독론을 혼합시킨 것이 바로 지방교회의 기독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지방교회는 삼위일체의 이단적인 양태론과 함께, 기독론에서 초대교회부터 존재해 왔던 그 이단적인 주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독론에 의한 몇가지 중대 오류 - 인성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

제 2세기의 그노시스파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부정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순화한 육체, 혹은 천적인 육체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를 구별하여, 신적인 그리스도는 임시로 인간예수와 결합하였다고 보았다. 제 4세기의 싸벨리우스파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한 형태로 생각하였다.(루이스벌콥, 기독교신학개론, 197-198쪽)

루이스벌콥이 말한 “인간적 예수와 신적 그리스도의 구별”이 바로 아폴로내리우스의 주장이며, 우리는 기독론에서 특히 아폴로내리우스에 대해서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그(아폴로내리우스)는 사람이 신, 혼, 영의 3부로 구성되었다는 헬라철학의 3분설의 개념을 가지고 로고스가 죄의 좌소인 영의 자리를 취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체와 혼만을 가지셨고 영의 자리는 로고스가 채웠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축소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영이 없는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신복윤교수.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 102쪽)

아폴로내리우스는 예수를 인상과 신성으로 분리하였는데 그가 말한 신성은 ‘영’이었으며, 그가 말한 인성은 ‘혼+육’으로
분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신성, 예수의 영은 곧 성부하나님 자신의 양태론적인 개념으로 본 것이다. 즉 양태론적으로 볼 때에 성부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직접 오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예수의 ‘영’이 되고, 이것을 지방교회는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달리 구별한다.

정통교회의 기독론은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키지 않으며, 인성과 신성이 변화하지 않은 채 하나의 품성으로 연합하였다고 가르친다. 즉 지방교회는 인간 예수를 혼과 육으로 분리시켰고,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성부하나님 자신을 영으로 분리시킨 것이다.

- 비록 그분의 인간의 부분(필자 주, 혼 + 육)이 죽었지만, 죽지 않는 그분의 신성한 부분(필자 주, 영)은 영원히 산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 안에 신성한 요소 곧 거룩의 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44-45쪽)

지방교회는 예수의 인성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고 신성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분리를 시키는 것이다.

- 그 분이 육체 안에 사셨을 때에 그분의 한 부분은 다만 사람, 곧 다윗의 씨였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그것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인정됨을 통해서이다(같은 책 45쪽)

- 그러므로 그분의 부활 이전에 그분은 그분의 신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 분의 성육신으로 그분은 인성 안으로 들어가셨고 그 분의 존재의 부분으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은 그분이 부활할 때까지는 아들화 되지않은, 즉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않았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23쪽)

- (골1:15-18의 구절)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67쪽)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

지방교회가 예수의 인성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하며 부분적으로만 선택하여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그러나 이 문장은 바로 앞 문장을 함께 보아야만 한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1:3)

다시 말하여 "예수님은 육신으로 볼 때에는 다윗의 혈통이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육신적인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다. 육신(사륵스)과 성결의 영(프뉴마)은 대조되는 단어로서, 육체적으로 보면 다윗의 혈통에서 났고, 영으로 보면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과 같이 그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가, 부활 후에 바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뜻인가?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신성은 일반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이셨고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라는 뜻), 영으로 보아도 부활함으로서 (일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정되다"는 단어는 헬라어 "호리조"로서"공표하다, 선언하다. 결정하다"는 해석이 보다 분명하다. 영어로는 "be declared"(NIV, KJV)와 "to
define correctly" 의 뜻이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보아도 다윗의 혈통으로 구약의 예언을 이루었으며, 영적으로 보아도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3) 인간론

➀ 예수(장소적인 삼분법으로분리) = 지방교회 교인(장소적인 삼분법으로 분리)

즉 지방교회의 교인들에게 양태론적인 영이 내주하면, 그들은 곧 예수와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혼과 육’(인성)을 가진 지방교회 교인들에게 양태론적인 ‘그 영’(신성), 즉 하나님의 실재가 들어오면 그들은 예수와 동일한 구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똑같이 됨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부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수의 재림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과 재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서 지방교회는 사람도 장소적인 삼분법(영 + 혼, 육)으로 분리하고, 예수도 삼분법(영 + 혼, 육)으로 분리를 시킨 것이다. 이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 이해가 갈 것이라고 본다. 더 자세한 설명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읽어보면 그들의 전모를 알게 될 것이다.

- 그러나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여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한 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 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8쪽)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다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그리스도도 우리와 하나가 되실 수 있다. 우리는 그 분과 한 영이 되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당신 안에 담기 위한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45쪽)

- 그 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 바로 그 때 그들은 안팍으로 - 생명과 본성과 기질과 몸의 형태에서
-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4쪽)

-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3장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쪽)

-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하나님 안에 있다. 바로 그 분이 우리 모두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 분의 맏아들과 똑같게 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결국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체현이 되게 하실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 이 삼일하나님이 우리의 거듭난 후로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해 오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이 될때까지 그 역사를 계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인 우리 모두는 거룩케 됨, 새롭게 됨, 변화, 형상을 본받음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온 존재의 영화롭게 됨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위트니스 리는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것을 하나님-사람(God-Man)이라고
부르며, 예수는 그 God-man의 첫 샘플이었다는 것이다. 혼과 육(인성)을 가진 지방교회 교인들이 신성(영)을 갖게 되면, 그들이 바로 God-man 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단적인 양태론과 이단적인 기독론이 아니라면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단적인 인간론이 결합되면, 그들의 신인합일론이 완성이 되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가증스럽게 정통교회에게 자신들의 교리가 복음주의였으며, 오해였다고 말하면서 재검토를 부탁하고 있으며, 한기총 회장에게 서신을 보내며,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었다, 더욱이 몇몇 기독교 인사들은 지방교회 세미나에서 축사를 해주고, 그들의 책을 광고를 해주며, 그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선전해주고 있었다.

➁ 지방교회의 영과 혼과 육에 대한 잘못된 삼분법

정통교단에서도 어느 교단은 이분법을, 어느 교단은 삼분법을 가르친다. 물론 필자는 어느 교단에서 가르치는 이분법이 옳은가 혹은 삼분법을 옳은가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필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살아있는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을 각각 분리된 장소적, 공간적인 개념으로 보는 헬라 철학적인 이원론에 대한 것이다. 즉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 영과 육의 대결, 선과 악의 대결의 이원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한국교회에 소개된 것은 워치만 니로부터 우리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숱한 이단들(지방교회, 구원파, 베뢰아, 다락방등)이 나타났다.

심지어 정통교회에서도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을 살아서 분리되는 장소적, 공간적인 개념으로 간주하여 아래와 같은 이원론을 주장하는 목사들이 상당히 많으며, 또한 영성운동, 영성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영과 육이 분리될 수 있다는 이단적인 주장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위트니스 리는 이단이지만, 워치만 니는 이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방교회 인간론은 워치만 니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한 그들의 양태론인 ‘삼일론’이라는 용어 자체도 워치만 니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들의 배타적인
교회론도 워치만 니로부터 나왔으며, 특히 단체구원론도 워치만 니로부터 나왔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관계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부자관계와 같았다"고 진술하며,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워치만 니는 배타적 형제교회의 존다비와 앤드류 머레이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워치만 니는 존다비의 극단적 세대주의와 앤드류 머레이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며, 특히 존다비의 그의 독단적인 성경해석 때문에 형제교회의 지도자들과 많은 분쟁을 일으켜 많은 지도자들이 형제교회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지방교회의 인간론은 삼분법을 공간적인 장소적 개념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예수와 사람을 동일한 존재로 보기위한 이론 전개에서 지방교회의 중요한 교리가 된다. 사람의 안에서 사탄(욱체)과 하나님(영)의 이원론적인 대결이 있으며, 이것이 지방교회의 성화교리가 되어지며, 베뢰아의 귀신론이 영향을 받게 된다.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위트니스 리, 왕국, 218쪽)

- 사람의 세 부분, 니 형제님은 그의 그리스도인 생활 초기부터 사람에게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살전 5:23). 그는 혼은 사람의 인격이고 몸은 물질적인 세계를 접하기 위한 사람의 바깥 부분이며 영은 영적 세계를 접하기 위한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임을 보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정통신학에서는 인간은 살아 있을 때에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존재로 봅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치만 니로부터 시작된 인간론은 사람을 살아서 영과 혼과 육으로 분리시킨다. 문제는 인간의 영에는 양태론적인 하나님이 거하고, 인간의 육에는 사탄이 거하게 된다는 이원론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인간의 혼에는 인격이 거하는데, 그 인간의 혼을 빼앗기 위하여 하나님과 사단이 싸운다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사단은 우리의 물질적인 몸 안에 인격화된 죄로 거하고 있다. 오직 살아있는 인격만이 어느 곳에 거할 수가 있다. 우리의 물질적인 몸 안에 있는 그의 근거지로부터 사단은 우리 혼을 차지하고 우리 혼을 그의 절대적인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한다.(왕국, 216쪽)

- 사단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우리 몸으로부터 우리 혼에 대해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이같이 사단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역사한다. 주님은 반대방향으로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역사하신다. 어느날 주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이요 축인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것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위트니스 리, 왕국, 217쪽)

참고삼아 베뢰아의 주장도 동일한 이원론이다. 물론 베뢰아도 양태론을 주장하며 기독론에서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킨다.

-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154쪽)

-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63쪽)

- 육신은 끊임없이 귀신들의 공격과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이 거룩함같이 우리의 육신도 거룩하면 이를 대항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 혼은 주님의 보혈로 거룩해지고 육체도 말씀을 순종함으로 거룩해지기에 우리에게는 귀신이 들어와 머물 수가 없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155쪽)

그렇다면 육은 죄를 짓거나 사탄의 거처이고 영은 죄가 없으며 하나님의 거처일까? 육도 죄를 짓지만 영도 죄를 짓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거룩함을 온전하게 이루어 육과 영(spirit)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인간은 육체나 영적으로 모두 죄를 지으며 더러워진 것이다. 물론 성욕, 식욕같은 욕망을 육체적인 욕망이라고 표현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은 고깃덩어리 육체만의 욕망이 아니며, 결국은 영혼과 육체를 포함하는 전인적인 욕망이다. 마찬가지로 육체는 죄악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다. 아래 본문은 영혼과 육체가 따로 따로 주를 찬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표현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니"(시63:1)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난다는 성경은 그들의 이원론과 정반대의 뜻을 언급한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물론 성경에서 바울은 육체와 영을 구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육체’와 ‘영’은 인간의 육신적 부분과 영적 부분을 대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을 대조시키는 표현이다. 바울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대조시키면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영을 좇는 자’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 ‘영’은 ‘성령 하나님을 좇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물론 정신적인 영혼과 반대되고 대조되는 부분을 가르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총체적인 인간’을 말함으로서 ‘성령 하나님’과 대조되는 경우로 사용된다. 특히 “육신에 죄가 거한다”는 표현은 그 육신 자체가 곧 성령을 거스리는 전인적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 성경본문과 같다.

“육체(인간)의 소욕은 성령(하나님)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다시 말하여 ‘육신에 있다’는 말의 뜻은 ‘거듭나지 않았다’는 상징적이며 상태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며, ‘영에 있다’는 말은 ‘거듭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개념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육신(인간)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바울이 말한 ‘육체의 소욕’이란 고깃덩어리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외면하는 전인적인 인간 자체의 소욕을 말하는 것이 명백하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은 문자적으로는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혼에 속한 사람’(헬, 푸쉬기코스)을 뜻한다. 다시 말하여 영과 혼은 실제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지만, 의미상 혹은 개념적으로 구별될 수 있으며, 영은 인간성의 특수한 방면으로서 사람과 하나님을 결합케 하는 방편으로, 혼은 인간에 내재한 속사람의 세속적 행동과 관습에 제한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죄는 그 자리를 육체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자아가 죄를 짓는 것이다. 성경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인간은 영(영혼)이 배제된 육체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히: 레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마음(헬: 칼디아)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15:19)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헬: 칼디아)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즉 (1) 이단적인 신론인 양태론 (2) 이단적인 아폴로내리우스의 기독론 (3)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키는 삼분법적인 인간론과 이원론이 혼합되어 “하나님 = 예수 = 살려주는 영”의 공식을 만들어내고, 예수를 “신성(영) + 인성(육 + 혼)”으로 분리시킨 다음에, “예수그리스도 = 지방교회 교인 = God man"이라는 공식을 만들어서 신인합일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부활이며 천국이며 재림이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유일하고 참교회이며, 기독교는 사탄의 왕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오해이다” 혹은, 자신들이 “복음주의이다”라고 거짓 조작을 하는 자들이 바로 지방교회의 정체인 것이다.


6. 신인합일론

1) 신화(신인합일론,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 : 부활, 거듭남, 재림과 동의어

지방교회는 자신들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변명을 하는데, “자신들은 하나님과 동일한 신격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지방교회가 하나님과 동일한 신격적인 위치가 된다고 가르친다고 비판한 적이 없다.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자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는 God-man의 첫 샘플이었으며, 지방교회 교인에게 그 영이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지방교회, 몰몬교, 신천지등이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그것을 신인합일설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설은 사람과 하나님의 구별이 없는 "똑같이 되는 것"을 말한다.

2) 정통신학이 말하는 연합의 개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든지 "예수를 닮는다"는 견해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등의 주장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성경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통신학이 말하는 연합의 개념이 무엇일까? 이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지방교회가 신인합일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정통신학의 연합개념과 같다고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인 그루뎀은 연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어감에 있어 각자의 개성을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을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자신으로 남아서(고전13:12)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요일3:2) 그의 얼굴을 대하며 그에게 경배를 드리고 이마에 이름을 가지고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성품에 있어서는 서로 정확하게 같으면서도 독립적인 위격으로 남아 계셨던 것처럼 우리도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도 다른 은사들과 기능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되어갈 것이다"(마10:39, 요10:3, 계2:17, 시37:4)(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63쪽)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되지는 못하며 그리스도에게로 흡수되거나 우리의 개성을 영원히 잃어 버리게 되지 않는다.

3) 지방교회의 신일합일

지방교회의 신일합일의 방법은 그야말로 유치한 수준을 드러낸다.

- 우리가 또한 삼일적으로 아들 그리스도의 실제화이신 그 영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이 "오 주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부를 때 당신은 주님을 누린다. 당신이 주님을 누릴 때 즉시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은 그 영이시다. 주님은 그 영으로 실제화 되신다. 주님을 더 부를수록 당신은 그리스도의 실제화이시며 실제의 영이며 당신 안에 계신 그 영을 더 갖게 된다. 실제란 주로 삼일하나님의 신성한 성분 안에 있는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그 영이 하나님의 실제이다.(위트니스 리, 새 예루살렘, 396쪽)

- 생명주는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올 준비가 되셨다. 우리가 "오 주 예수여"라고 부를 때 그분은 즉시 우리의 영의 종착지에 도착하신다. 우리의 영은 그분의 노정의 종착지이다. (세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28쪽)

- 우리는 불신자를 구원하기 위해 설교가 필요없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 '오 주 예수'를 세 번만 말하도록 한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불신자가 해야 할 것은 입을 열고 '오 주 예수여 오 주 예수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믿을 의도가 없다 할 지라도 그들은 붙잡히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 의도가 있든 없든, 그들이 창문을 여는 한 공기는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다. (Lee Stream magazine, 교회와 신앙에서 발췌)

- 교회가 그분의 이 한 영을 마시며 그 분과 한 영이 됨: 우리가 "오 예수여!"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순간순간 이 성령을 마셔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 성령이 오신다. 우리가 부르는 것은 주님이지만 받는 것은 성령이다. 예수는 그 분의 이름이요, 성령은 그분의 인격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오게 된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성령이 온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9쪽)

-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생명을 분배하는 영이 되심은 그 분이 사람에게 오시는 마지막 단계이다. 이제 오직 한 가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 분을 믿는 것이다. 그 분을 믿는 길은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분은 즉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 분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며, 우리는 그 분 안에 들어 간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을 그분의 노정의 종착지인 우리의 영 안에 모셔온다. (세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28쪽)

그들은 "오 주여"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주의 이름을 부르면, 양태론의 마지막 단계인 생명의 영이며 부활의 영인 삼일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실재인 그 영이 그들에게 들어오고, 그렇게 하여 그들에게 들어온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 안에서 성숙하게 자라나면 그들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소위 신일합일이라고 불리는 방법이 주문 외우듯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음에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면 주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신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주장일 따름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은혜이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용어는 기독교의 용어가 아니다. 부활, 천국, 거듭남, 구원등은 모두 기독교와 다르며, 그들이 말하는 용어는 결국 신인합일을 뜻한다.

-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새 창조 안의 부활한 나를 말한다. 이 부활한 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활시키셨는가? 부활 안에서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우리의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활한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3쪽)

- 그와 같이 완결된 영을 살아날 때, 이것이 바로 완결된 영의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이 부활은 어떤 능력이나 사물이 아니라 한분의 인격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그분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더욱이 부활의 실제는 삼일하나님의 최종완결인 그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결론 -삼일하나님, 그리스도, 그 영, 부활은 하나임-을 갖는다.

-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위트니스 리의 왕국, 329쪽)

-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심으셨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서 자라고 계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 안에서 성숙되고 계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익고 성숙할 때,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의 오심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닐 것이다.(왕국, 330쪽)

지방교회는 예수의 재림도 다르고, 예수의 부활도 다르며, 사후의 천국도 부정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오직 신인합일이며, 지방교회로 들어오는 단체구원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그런 뜻이 아니며 오해라고 조작을 하고 있다.

-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지방교회
게시판의 글)

-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왕국, 315쪽)

-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체적인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의 나라요,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단체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2쪽)

- 한 단체를 얻고자 하신다. 삼일하나님 그 분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 안으로 역사하게 하시어 그들을 한 무리가 되게 하고, 단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 이것을 매우 분명히 볼 수 있다. 이는 곧 성도 개인의 신령함이 아니라 온 교회들이 하나님께 얻은 바 되고 거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3쪽)

- 그러므로 천국의 실제와 외형은 교회와 함께 시작해서 교회와 함께 나아갔다. 천국의 실제와 외형은 교회와 함께하며 교회에 달려 있다. 한편으로 천국의 실제가 교회 안에 감취어져 있고, 또 한편으로는 천국의 외형이 교회의 외양과 함께 한다. 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교회 시대를 끝내실 때 천국의 실제와 외형도 끝날 것이다. 그 때 주 예수님은 천국의 외형, 즉 소위 기독교계를 불태우실 것이다. 동시에 천국의 실제는 천국의 나타남이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 왕국, 667쪽)

지방교회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들은 비록 기독교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개념 자체가 모두가 다르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독교에 수많은 분파된 이단들을 양산한 곳이다. 그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변호하고 옹호하여 주는 목사들이 있다는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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